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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처음에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학교 배경 좀비물'이라는 설정이 너무 익숙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부산행이 이미 한국 좀비 장르의 기준점을 높여놓은 상황에서, 학교라는 한정된 공간에 청소년 캐릭터들을 몰아넣는다는 구도는 오히려 진부하게 보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1화를 틀고 나서 중간에 멈추지 못했습니다. 단순히 좀비가 무섭거나 스릴이 넘쳐서가 아니라, 이 드라마가 생존보다 '누가 살아남을 자격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계속 던지는 방식이 불편할 만큼 날카로웠기 때문입니다. 이 리뷰에서는 그 불편함이 어디서 오는지, 그리고 그것이 이 작품의 강점인지 한계인지를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학교라는 공간이 만들어내는 갈등의 밀도
지금 우리 학교는의 배경인 효산고등학교는 단순한 장소가 아닙니다. 이 공간에는 이미 좀비 발생 이전부터 폭력, 따돌림, 권력 불균형이 존재했고, 드라마는 그 구조를 좀비 사태가 터진 이후에도 그대로 유지시킵니다. 살아남은 학생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은 외부 위협 때문이 아니라, 이미 내재돼 있던 서열과 두려움이 극한 상황에서 폭발한 결과입니다. 이 부분이 저에게는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좀비가 없어도 이 학교에는 문제가 있었다는 전제를 드라마가 숨기지 않습니다.
특히 이야기 초반에 묘사되는 학교폭력 피해자 이은지(이유미)의 서사는 단순한 피해자 서사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녀가 반좀비 상태인 '햄비'로 변해가면서 보여주는 분노와 선택은, 이 드라마가 단순히 '착한 아이들이 살아남는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는 선언처럼 읽혔습니다. 오히려 억압받던 존재가 극한에서 어떤 형태로 변하는지를 보여주면서, 시청자가 이은지에게 동정과 공포를 동시에 느끼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 이중적 감정이 작품의 핵심 장치 중 하나라고 저는 봤습니다.
인물들의 선택이 서사를 이끄는 방식
주인공 그룹은 전형적인 청소년 생존물의 공식을 따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각 인물이 내리는 선택이 단순히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남라(박지후)와 수혁(윤찬영)의 관계는 로맨스보다 서로의 생존 방식이 어떻게 충돌하고 조율되는지를 보여주는 서사적 장치에 가깝습니다. 수혁이 위기 상황에서 보이는 판단력은 영웅적이기보다 현실적이고, 그 현실성이 오히려 캐릭터를 설득력 있게 만듭니다.
조금 아쉬웠던 점은, 주인공 그룹 외의 조연 캐릭터들이 초반에 비해 후반부로 갈수록 서사적 무게를 잃는다는 것입니다. 초반에 뚜렷한 개성과 배경을 가진 인물들이 중반 이후에는 사건을 전개하는 도구로 기능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특히 일부 조연의 희생 장면이 감정을 충분히 쌓지 않은 상태에서 빠르게 처리되면서, 그 죽음이 가져야 할 무게가 희석되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이 부분은 12부작이라는 분량이 오히려 발목을 잡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좀비 발생의 원인과 드라마가 제시하는 맥락
이 드라마가 흔한 좀비물과 구별되는 지점 중 하나는 좀비 바이러스의 발생 원인을 단순한 사고나 외부 침입으로 처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바이러스는 학교 과학 교사 이병찬(김병철)이 자신의 아들을 괴롭히는 학생들에 대한 분노에서 비롯된 실험의 결과물입니다. 즉, 이 재난의 씨앗은 학교 내부에 이미 존재했던 폭력 구조에서 자라난 것입니다. 처음 이 설정을 접했을 때는 다소 작위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쌓이면서, 이 설정이 오히려 드라마 전체의 주제를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재난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곪아 있던 내부에서 온다는 메시지입니다.
다만 이 설정이 완전히 설득력 있게 작동하려면 이병찬 캐릭터의 서사가 더 촘촘해야 했습니다. 그의 심리적 붕괴 과정이 충분히 묘사되지 않은 채 빠르게 진행되면서, '왜 하필 이 방법을 선택했는가'에 대한 납득이 쉽지 않은 순간이 있습니다. 이 부분은 이 드라마의 가장 큰 서사적 약점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연출과 분위기, 한국 좀비물로서의 완성도
시각적으로 이 드라마는 상당히 과감합니다. 학교 복도, 급식실, 옥상이라는 익숙한 공간이 좀비들로 가득 차는 장면은 생경한 공포감을 줍니다. 그 익숙함이 낯선 공포와 충돌할 때 생기는 불쾌한 감각이 잘 활용되어 있습니다. 좀비 분장과 움직임의 완성도도 상당히 높습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이라는 제작 여건이 이 부분에서 확실히 기여했다고 느꼈습니다.
한편으로 드라마의 속도감은 회차마다 균일하지 않습니다. 초반 몇 회는 빠른 전개로 시청자를 끌어들이지만, 중반부에서는 생존 그룹 내부의 갈등과 외부 상황(정부 대응, 구출 시도 등)을 번갈아 보여주면서 리듬이 느려지는 구간이 생깁니다. 이 부분을 지루하게 느끼는 시청자도 있을 것이고, 저는 개인적으로 그 구간이 인물들을 더 이해하게 만드는 시간이었다고 봤습니다. 하지만 속도감 있는 전개를 기대하고 보는 분들에게는 다소 호불호가 있을 수 있습니다.
계급과 생존 — 이 드라마가 진짜 하고 싶은 말
제가 이 드라마를 보면서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부분은 생존자들 사이의 계급 재편입니다. 좀비 사태 이전에 학교에서 힘을 가졌던 인물들이 극한 상황에서도 그 권력을 유지하거나, 반대로 완전히 무너지는 방식이 흥미롭습니다. 드라마는 이 과정을 통해 '재난 앞에서 인간은 평등해진다'는 흔한 명제를 거부합니다. 오히려 재난은 기존의 불평등을 더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계기가 됩니다.
이 시각이 드라마 전체에 걸쳐 일관되게 유지되는 건 아닙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함께 살아남는다'는 연대의 메시지가 강해지면서, 초반에 제기했던 날카로운 질문들이 다소 희석되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가 단순한 좀비 생존 오락물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청소년 폭력과 구조적 문제를 배경으로 깔고 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 지점이 이 작품을 비슷한 장르물들과 구별 짓는 가장 큰 요소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결말과 시즌 2에 대해
시즌 1의 결말은 완결된 마무리라기보다 열린 결말에 가깝습니다. 생존한 인물들의 이후 상황과 바이러스의 확산 여부가 명확히 정리되지 않은 채 끝나면서, 시즌 2에 대한 기대를 의도적으로 남겨둔 구성입니다. 이 결말 방식이 만족스럽지 않은 시청자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 열린 결말이 이야기 자체의 완결성보다 세계관 확장을 우선한 선택이라고 읽었는데, 그 선택이 좋았는지는 시즌 2가 실제로 나와야 판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재 시즌 2 제작이 확정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구체적인 공개 일정은 이 글 작성 시점 기준으로 확인되지 않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마지막으로 — 이 드라마를 어떻게 기억하게 됐는가
지금 우리 학교는은 좀비물의 외피를 입고 있지만, 실제로는 학교라는 공간이 이미 재난 이전부터 얼마나 폭력적인 구조 위에 서 있었는지를 묻는 드라마입니다. 처음에는 그냥 잘 만든 좀비 드라마라고 생각했는데, 다 보고 나서 가장 오래 머릿속에 남은 건 좀비 장면이 아니라 이은지라는 캐릭터가 선택하는 순간들이었습니다. 그 잔상이 꽤 오래 남았습니다.
완벽한 드라마는 아닙니다. 중반부의 속도 저하, 일부 조연의 희박한 서사, 바이러스 발생 원인의 설득력 부족은 분명한 한계입니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가 글로벌 시청자들에게 통한 이유는, 좀비라는 장르 언어를 빌려 한국 사회의 구체적인 문제를 이야기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무섭고 박진감 있는 드라마를 찾는 분들에게도, 그 이상의 이야기를 원하는 분들에게도 각자의 방식으로 볼 거리가 있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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