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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처음에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상류층 학교, 비밀, 위계질서'라는 키워드는 이미 한국 드라마에서 여러 번 소비된 소재였고, 넷플릭스에서 공개된다는 사실만으로 자동으로 '화려한 영상 + 얕은 서사'를 예상하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막상 보기 시작하니 생각보다 계급 구조를 묘사하는 방식이 단순히 '부자 vs 가난한 자'라는 이분법에 머물지 않으려는 시도가 보였고, 그 시도가 어디까지 성공했는지를 따져보고 싶어졌습니다. 이 글은 하이라키의 세계관과 캐릭터 설계, 그리고 장르로서의 완성도를 중심으로 제가 느낀 것들을 정리한 후기입니다.
| 항목 | 내용 |
|---|---|
| 작품명 | 하이라키 (Hierarchy) |
| 플랫폼 | 넷플릭스 |
| 공개 연도 | 2024년 |
| 장르 | 학원 미스터리, 드라마 |
| 주요 출연 | 이채민, 로몬, 김재원, 노정의 |
| 에피소드 수 | 7부작 |
계급 질서를 묘사하는 방식 — 익숙한 소재, 낯선 각도
하이라키의 배경은 재벌과 상류층 자녀들이 모인 주성고등학교입니다. 학교 안에는 암묵적인 위계가 존재하고, 그 질서를 유지하는 규칙과 그것을 깨려는 인물이 충돌하는 구조입니다. 여기까지는 전형적인 설정이고, 저도 처음에는 '스카이캐슬의 학생판 정도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작품이 흥미로워지는 지점은 계급의 경계가 단순히 경제력이나 가문으로만 나뉘지 않는다는 설정에 있습니다. 주성고 안에서 '서열'은 오히려 정보와 침묵, 그리고 묵인으로 유지됩니다. 누가 무엇을 알고 있는가, 누가 모른 척하는가가 권력의 실체라는 방식으로 계급을 묘사하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꽤 흥미로웠습니다. 단순히 돈 많은 아이들이 가난한 아이를 괴롭히는 구조가 아니라, 그 질서에 공모하는 방식으로 모두가 연루되어 있다는 설정이 드라마에 묘한 긴장감을 만들어냅니다.
주인공 강하의 침투 서사 — 복수극인가, 성장극인가
이야기는 쌍둥이 형의 죽음을 파헤치기 위해 주성고에 잠입하는 강하(이채민 분)의 시점에서 시작합니다. 복수를 목적으로 한 침투 서사라는 점에서 처음에는 주인공의 동기가 뚜렷하고 이야기 추진력이 강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실제로 초반 두세 편은 그 기대를 어느 정도 충족시켜 줬습니다. 강하가 상류층 학생들의 네트워크 안으로 파고들면서 정보를 수집하는 장면들은 긴장감 있게 전개되고, 이채민 배우가 겉으로는 순응하면서 안으로는 관찰하는 이중성을 표정으로 잘 표현해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중반부로 넘어가면서 강하의 목적의식이 흐릿해지는 순간들이 생깁니다. 복수극으로 시작했다가 로맨스와 학원물의 문법이 섞이면서, 강하가 무엇을 원하는지 관객이 잠시 헷갈리게 되는 구간이 있습니다. 이 부분은 조금 아쉬웠습니다. 서사의 중심을 잡아줄 주인공의 감정선이 에피소드마다 일관성을 잃으면 몰입이 끊기거든요.
주성고 권력자들 — 악역의 입체성과 그 한계
하이라키에서 가장 많은 이야기가 나오는 캐릭터는 아마 주성고의 실질적 지배자 역할을 하는 김리안(로몬 분)일 것입니다. 로몬 배우는 냉정하고 계산적인 인물을 연기하면서 동시에 그 안에 균열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캐릭터를 구축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악역처럼 보이지만, 그가 유지하려는 질서의 이유가 조금씩 드러나면서 단순한 빌런이 아니라는 인상을 줍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리안이 자신이 속한 계급의 질서를 스스로 의심하는 장면들이었는데, 그 의심을 표현하는 방식이 대사보다 표정과 침묵으로 처리된 장면에서 더 효과적이었습니다. 반면 조력자 역할의 일부 캐릭터들은 서사에서 충분히 소화되지 못하고 기능적으로만 쓰이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히 강하의 주변 인물들 중 일부는 주인공의 감정 변화를 설명하기 위한 장치로만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그 점이 캐릭터 전체의 완성도를 조금 낮춘다고 봅니다.
연출과 시각적 설계 — 공간이 계급을 말하는 방식
하이라키의 연출에서 제가 주목한 것은 공간의 사용 방식입니다. 주성고의 건축과 인테리어는 지나치게 비현실적으로 화려한데, 이것이 단순히 '부자 학교'를 보여주는 것을 넘어서 그 공간 안에 있는 인물들이 얼마나 그 공간에 속해 있는가, 또는 속해 있지 않은가를 시각적으로 구분하는 데 활용됩니다. 강하가 처음 학교에 들어서는 장면과 리안이 같은 공간을 이동하는 장면의 카메라 앵글과 조명이 다르게 설계된 것이 그 예입니다. 강하의 시점에서는 공간이 낯설고 압도적으로 보이도록, 리안의 시점에서는 그 공간이 자연스럽고 익숙한 배경으로 처리됩니다. 이 방식은 말로 설명하지 않고도 두 인물의 위치 차이를 전달하는 효과적인 연출이었습니다. 다만 후반부로 갈수록 이런 시각적 설계의 일관성이 다소 흐려지는 느낌이 있었고, 미스터리 해소보다 감정적 클라이맥스에 집중하면서 초반의 긴장감이 다소 희석되었습니다.
비슷한 작품들과의 비교 — 하이라키만의 색깔이 있는가
하이라키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비교하게 되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스카이캐슬, 더 글로리, 펜트하우스가 떠오르고, 해외로는 스패니시 드라마 엘리트(Elite)와 구조적으로 유사하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실제로 엘리트와 비교하면 '외부인이 상류층 학교에 침투해 내부 비밀을 파헤친다'는 기본 골격이 상당히 닮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비교가 하이라키를 폄하하는 방식으로 쓰이는 것은 다소 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엘리트가 섹슈얼리티와 계급 문제를 더 전면에 내세운다면, 하이라키는 한국 사회 특유의 '침묵과 공모'라는 방식으로 계급을 묘사하는 데 더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재벌 2세들의 일탈이나 외부인의 복수라는 소재는 겹치지만, 그 안에서 한국 드라마 특유의 가족 서사와 권력 세습 구조가 더 두드러지게 작동합니다. 다만 이 차별성이 완전히 설득력 있게 전개되느냐고 묻는다면, 7부작이라는 분량 안에서 충분히 소화되지 못한 부분이 있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호불호가 갈리는 이유 — 어떤 시청자에게 맞는 작품인가
하이라키는 분명히 모든 시청자에게 고르게 만족스러운 작품은 아닙니다. 제가 느낀 가장 큰 호불호 포인트는 장르의 혼재입니다. 미스터리, 복수극, 로맨스, 학원물이 한 작품 안에 공존하는데, 이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엮이는 구간도 있지만 각각이 따로 노는 구간도 있습니다. 미스터리 해소를 기대하며 보는 시청자라면 중반부의 로맨스 전개가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고, 반대로 캐릭터 간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것을 즐기는 시청자라면 오히려 이 혼재가 작품을 더 풍성하게 만든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전자에 가까운 시청자였기 때문에 중반부에서 몰입이 흔들리는 경험을 했습니다. 반면 시각적으로 세련된 화면과 배우들의 외모와 연기를 즐기는 분들에게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경험이 될 것 같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학원 계급 드라마 장르를 좋아하고, 비주얼과 분위기를 우선시하며, 빠른 미스터리 해소보다는 인물 관계의 변화를 따라가는 것을 즐기는 시청자. 반면 촘촘한 미스터리 서사와 일관된 주인공의 동기를 기대한다면 다소 아쉬울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결론 — 세련된 외관과 덜 완성된 내부 사이에서
하이라키는 기대보다 흥미로운 지점이 분명히 있는 작품입니다. 계급을 침묵과 공모의 구조로 묘사하려는 시도, 공간을 통해 위계를 시각화하는 연출, 그리고 단순 악역을 넘어서려는 캐릭터 설계는 이 작품을 단순한 자극적 학원물 이상으로 만들려는 의도를 보여줍니다. 그 의도가 7부작 전체에서 일관되게 실현되지는 못했고, 장르 혼재로 인한 집중력 분산이 아쉬웠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주얼과 분위기를 즐기면서 인물들의 관계 변화를 따라가는 것을 좋아하는 시청자라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경험이 될 것입니다. 저는 이 작품을 '완성도 높은 수작'이라기보다는 '방향성은 흥미롭고 실행은 절반쯤 성공한 작품'으로 기억하게 될 것 같습니다. 학원 미스터리 장르를 좋아하고 넷플릭스 한국 드라마를 꾸준히 챙겨보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 볼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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