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면, 처음에는 이 영화를 보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1994년 서울을 배경으로 한 중학생 성장 이야기'라는 소개만 보면, 어딘가 익숙한 노스탤지어 영화처럼 들리거든요. 성수대교 붕괴 사건이 배경에 깔려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그래서인지 '역사적 사건을 통해 성장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구조겠구나' 하고 막연하게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나서 그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 영화는 사건을 통해 성장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으면서 더 많은 것을 보여줍니다. 그 방식이 저를 당황하게 했고, 결국 오래 붙잡아두었습니다.이 영화가 다루는 것: 사건이 아니라 감각벌새는 1994년 서울 성북동 일대를 배경으로, 중학교 2학년 은희(박지후)의 일상을 따..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는 이 영화를 '퀴어 멜로'라는 장르 분류로만 접근했습니다. 포스터에 담긴 설경과 김희애의 표정이 무언가를 암시하고 있었지만, 그게 얼마나 조용하고 묵직한 방식으로 전달될지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막상 영화가 시작되고 나서 느낀 건, 이 작품이 퀴어 서사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오래 눌려 있던 한 사람의 감정이 편지 한 통을 계기로 어떻게 스스로를 드러내는지를 따라가는 영화라는 점이었습니다. 장르보다 결이 먼저 와닿는 영화였고, 그 결이 생각보다 훨씬 섬세했습니다.편지 한 통이 건드린 것들영화의 시작은 단순합니다. 윤희(김희애)에게 일본에서 편지 한 통이 도착합니다. 발신인은 준(나카무라 유코), 오래전 윤희가 마음을 품었던 인물입니다. 그런데 이 편지를 먼저 읽은 건 윤희의 딸 새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