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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처음에는 '오징어 게임 이후 넷플릭스가 밀어주는 한국 콘텐츠 중 하나겠지'라는 생각으로 틀었습니다. 연상호 감독이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왔고, 부산행과 반도를 봤던 기억이 있어서 어느 정도 예상이 됐습니다. 강렬한 시각적 충격, 빠른 전개, 사회 비판. 그 공식 안에서 움직이겠구나 싶었죠. 그런데 1화를 보고 나서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지옥이 무서운 건 괴물이 아니었습니다. 괴물이 나타난 뒤에 사람들이 어떻게 변하는가, 그 과정이 훨씬 더 불편하고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고지서 장면이 드라마 전체를 결정짓는 이유
지옥에서 가장 먼저 강렬하게 남는 장면은 1화 초반, 카페 한복판에 나타난 정체 모를 형상이 한 남성에게 '고지서'를 전달하는 순간입니다. 고지서라는 단어 자체가 묘하게 행정적이고 일상적인 느낌을 주는데, 그 낯선 존재가 '당신은 며칠 뒤 지옥에 간다'는 내용을 너무도 사무적으로 통보하는 방식이 오히려 공포감을 배가시켰습니다. 괴물이 소리를 지르거나 폭력을 휘두르는 장면보다, 그 고지서 장면 하나가 드라마 전체의 분위기를 설정하는 역할을 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작품이 초자연 현상 자체보다 그 현상이 사회에 어떤 방식으로 해석되고 이용되는가에 집중한다는 신호를 아주 이른 시점에 보내는 거죠. 개인적으로는 이 선택이 연상호 감독이 이 시리즈에서 가장 잘 한 결정이라고 봅니다.
새진리회 집회 공간이 만들어내는 불안감
새진리회라는 종교 집단의 설정은 이 드라마에서 핵심 축을 담당합니다. 단순히 악당 집단이 아니라, 초자연 현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해석권을 독점하려는 집단으로 그려집니다. 집회 장면을 보면서 제가 주목한 건 공간 구성이었습니다. 의도적으로 밝고 정돈된 무대 위에 정재현 의장(유아인 분)이 서고, 그 아래에 군중이 배치됩니다. 이 수직 구조가 반복되면서 관객은 자연스럽게 권력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유아인의 정재현은 카리스마와 광기 사이 어딘가에서 균형을 잡는 캐릭터인데, 목소리 톤을 낮게 유지하면서도 확신에 찬 시선으로 군중을 바라보는 연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위압감이 느껴지는 방식이었고, 그게 오히려 더 섬뜩하게 작동했습니다. 다만 시즌이 진행될수록 새진리회의 내부 논리가 다소 단순하게 처리되는 느낌이 있었고, 그 부분은 조금 아쉬웠습니다.
박정자 배우의 시연 장면, 그리고 군중의 얼굴
지옥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장면을 하나만 꼽으라면, 저는 박정자 배우가 연기한 박순옥의 시연 장면을 선택하겠습니다. 고령의 여성이 스스로 시연을 감행하는 장면은 단순한 충격 장치가 아닙니다. 그 장면에서 카메라가 잡는 건 괴물보다 주변 군중의 표정입니다. 공포, 흥분, 경이, 환호가 뒤섞인 군중의 얼굴이 이 드라마가 말하려는 것의 핵심이라고 저는 해석했습니다. 초자연 현상 자체가 아니라, 그 현상을 바라보는 인간의 반응이 진짜 주제라는 것을 이 장면이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줍니다. 박정자 배우는 대사 없이 표정과 움직임만으로 인물의 결단과 두려움을 동시에 담아냈는데, 짧은 등장임에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원작 웹툰과 드라마 사이의 거리
지옥은 연상호 감독이 최규석 작가와 함께 연재한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합니다. 웹툰을 먼저 읽은 독자라면 드라마 각색 방식이 꽤 충실하다는 인상을 받을 겁니다. 다만 드라마는 시각적 표현이 가능한 매체의 특성을 살려 집회 장면이나 시연 장면의 규모를 훨씬 크게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웹툰의 차분하고 음울한 톤이 다소 스펙터클한 방향으로 이동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웹툰의 밀도 있는 내면 묘사가 드라마에서 약간 희석된 느낌이 있었습니다. 특히 초반 형사 진경훈(양익준 분) 캐릭터가 웹툰에서는 조금 더 내면적인 갈등을 보여주는 반면, 드라마에서는 사건을 이끌어가는 기능적 역할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드라마가 원작을 배신했다고 볼 수는 없고, 두 매체가 각자의 방식으로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고 이해하는 편이 맞다고 봅니다.
후반부의 속도감과 아쉬운 지점들
시즌 1은 총 6화로 구성되는데, 전반부 3화와 후반부 3화 사이에 체감 속도 차이가 있습니다. 전반부가 사회적 맥락과 캐릭터 소개에 충분한 시간을 쓴다면, 후반부는 사건 해결과 감정적 클라이맥스를 향해 빠르게 달립니다. 그 과정에서 일부 조연 캐릭터들의 동기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채 사라지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특히 화살촉이라는 자경단 집단의 행동 논리는 설정 자체는 흥미롭지만, 그들이 왜 그렇게 빠르게 폭력적으로 변하는지에 대한 내면적 설명이 부족했습니다. 이 부분은 '인간은 원래 이렇다'는 전제로 넘어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저는 그 단순화가 조금 아쉬웠습니다. 물론 반대로 보면, 그 단순화 자체가 군중 심리의 무서움을 표현하는 방식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이 드라마가 남기는 질문
지옥을 다 보고 나서 제가 계속 생각하게 된 건 '만약 실제로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면 나는 어떤 군중에 속할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새진리회의 논리를 따를 것인가, 화살촉처럼 폭력으로 반응할 것인가, 아니면 그 현상을 인간의 방식으로 해석하려는 소수 중 한 명이 될 것인가. 드라마는 이 질문에 직접 답을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답을 유보한 채 시즌을 끝냅니다. 이런 열린 결말 방식은 호불호가 갈릴 수 있습니다. 명확한 해소를 원하는 분들에게는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고, 저처럼 여운을 선호하는 분들에게는 오히려 이 작품이 오래 남는 이유가 됩니다. 이 드라마의 핵심은 초자연 현상이 아니라 그 현상을 둘러싼 인간의 선택이라는 점에서, 지옥은 단순한 장르물이 아닌 사회 비판 드라마로 읽어야 제 맛이 납니다.
자주 묻는 질문
결론 — 괴물보다 인간이 더 무서운 드라마
지옥을 다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 드라마를 오컬트 장르로 분류하는 건 좀 억울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초자연 현상이 핵심 설정이고 괴물이 등장하지만, 이 작품이 진짜 집중하는 건 그 현상을 둘러싼 사람들의 선택입니다. 고지서를 받은 사람을 죄인으로 규정하고 싶어하는 욕망, 그 규정을 통해 권력을 얻으려는 집단, 그리고 그 논리에 흡수되는 군중. 이 구조는 특정 시대나 사회에 국한되지 않는 보편적인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연상호 감독은 이 주제를 넷플릭스라는 플랫폼과 6화라는 압축된 형식 안에서 충분히 설득력 있게 풀어냈습니다. 아쉬운 지점도 분명 있습니다. 조연의 동기 부족, 후반부의 다소 급한 전개, 화살촉 집단의 단순화된 묘사. 그럼에도 제 기준에서는 이 드라마가 던지는 질문 자체의 무게가 그 아쉬움을 충분히 상쇄합니다. 장르물의 외피를 두른 사회 비판 드라마를 찾고 계신다면, 지옥은 그 기대에 잘 부응하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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