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면,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속편'이라는 단어가 주는 기대와 불안이 반반이었습니다. 리들리 스콧의 1982년 원작 《블레이드 러너》는 SF 영화사에서 거의 신성불가침의 영역에 있는 작품이고, 속편이 그 그늘 아래서 살아남는 경우는 드물었으니까요. 그런데 드니 빌뇌브가 연출을 맡는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는 태도가 조금 달라졌습니다. 《프리즈너스》, 《시카리오》, 《컨택트》를 거쳐온 감독이라면 적어도 원작의 분위기를 소비하는 데 그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막상 보고 나서 느낀 건, 이 영화가 원작의 세계를 '확장'하는 것보다 원작이 던진 질문을 더 깊이 파고드는 쪽을 선택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이 162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을 정당화하는지, 저는 지금도 반은 동의하고 반은 ..
처음 이 영화를 보기 전에는 솔직히 '외계인 접촉 영화'라는 장르적 선입견이 있었습니다. 거대한 우주선, 긴장감 넘치는 군사 대치, 어딘가에서 한 번쯤 본 것 같은 재난 구도. 그런 기대를 품고 시작했는데, 영화가 시작하고 20분쯤 지났을 때 제가 완전히 다른 종류의 영화를 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컨택트(원제: Arrival, 2016, 국내 개봉 2017)는 외계인이 지구에 왔을 때 인류가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다루는 척하면서, 사실은 훨씬 더 내밀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입니다. 언어가 우리가 시간을 인식하는 방식 자체를 바꿀 수 있다면 어떨까? 이 글에서는 그 질문을 드니 빌뇌브 감독이 어떤 음향, 어떤 공간, 어떤 시각 언어로 풀어냈는지에 집중해 이야기하려 합니다.침묵과 소리가 교차하는 방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