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면, 처음엔 그냥 화려한 핑크빛 오락 영화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마고 로비가 주연이고, 그레타 거윅이 감독이라는 사실이 기대치를 높이긴 했지만, 바비 인형을 소재로 한 영화가 얼마나 깊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의심도 있었어요.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 이 영화는 단순히 '핑크 판타지'가 아니라, 정체성과 존재 의미를 묻는 꽤 진지한 시도였습니다. 다만 그 시도가 완전히 성공했는가에 대해서는 저는 유보적인 입장입니다. 이 글에서는 영화의 가장 논쟁적인 지점, 즉 페미니즘 메시지의 설득력, 켄이라는 캐릭터가 만들어낸 아이러니, 그리고 화려한 미장센이 역설적으로 내용의 공허함을 가리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페미니즘 메시지, 얼마나 설득력이 있었나영화의 핵심 주제는 명확합니다. 완벽한 바비..
솔직히 말하면,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속편'이라는 단어가 주는 기대와 불안이 반반이었습니다. 리들리 스콧의 1982년 원작 《블레이드 러너》는 SF 영화사에서 거의 신성불가침의 영역에 있는 작품이고, 속편이 그 그늘 아래서 살아남는 경우는 드물었으니까요. 그런데 드니 빌뇌브가 연출을 맡는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는 태도가 조금 달라졌습니다. 《프리즈너스》, 《시카리오》, 《컨택트》를 거쳐온 감독이라면 적어도 원작의 분위기를 소비하는 데 그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막상 보고 나서 느낀 건, 이 영화가 원작의 세계를 '확장'하는 것보다 원작이 던진 질문을 더 깊이 파고드는 쪽을 선택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이 162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을 정당화하는지, 저는 지금도 반은 동의하고 반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