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면, 처음에 이 영화를 볼 때 기대했던 것은 '이민자의 고난과 성공'이라는 전형적인 서사였습니다. 낯선 땅에서 고생하고, 결국 뭔가를 이루어내는 이야기. 그런데 막상 영화가 시작되고 아칸소의 허허벌판 위에 트레일러 한 채가 덩그러니 놓이는 장면을 보는 순간, 이 영화가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을 것이라는 걸 직감했습니다. 미나리는 성공담이 아니라 실패와 균열과 그럼에도 남아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였고, 그 점이 오히려 오래 마음에 걸렸습니다. 이 글에서는 줄거리 요약보다는 영화 속 공간과 소품, 특히 '미나리'라는 식물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그리고 순자라는 캐릭터가 이 가족 서사에서 무엇을 바꾸는지를 중심으로 이야기해보려 합니다.아칸소 땅 — 꿈의 공간인가, 고립의 공간인가제이콥(스티..
솔직히 말하면, 처음 이 영화를 보기 전에는 DC 코믹스의 빌런 기원 이야기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배트맨의 숙적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프리퀄 같은 것이요. 그런데 막상 영화가 시작되고 나서는 그런 기대가 완전히 빗나갔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조커(2019)는 코믹스 세계관을 거의 활용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틴 스코세이지의 택시 드라이버나 킹 오브 코미디를 떠올리게 하는, 사회에서 밀려난 한 인간의 내면 붕괴를 정면으로 다루는 작품입니다. 이 글에서는 그 붕괴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세 가지 장치, 즉 계단, 광대 분장, 그리고 아서의 웃음소리를 중심으로 이 영화를 다시 들여다보려 합니다.고담의 계단이 말하는 것이 영화에서 계단은 단순한 배경이 아닙니다. 아서 플렉이 매일 힘겹게 올라..
처음 기생충을 보기 전에는 솔직히 '또 다른 계층 비판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봉준호 감독이라는 이름이 주는 기대는 분명 있었지만, 칸 황금종려상 수상 이후 쏟아진 '역대급 걸작'이라는 수식어들이 오히려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것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계층을 이야기하는 척하면서, 사실 공간을 이야기하고 있구나.' 계단을 오르내리는 장면 하나하나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인물의 운명을 암시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이 영화가 왜 그렇게 오래 회자되는지 이해가 됐습니다. 이 리뷰에서는 그 공간 설계의 논리, 배우들의 연기가 서사와 맞물리는 지점, 그리고 봉준호 감독의 전작들과 어떤 맥락 위에 놓여 있는지를 중심으로 이야기해보려 합니다.항..
처음 곡성을 보기 전에 저는 이 영화를 단순히 '귀신 나오는 공포 영화' 정도로 짐작했습니다. 나홍진 감독의 전작 추격자와 황해를 이미 봤기 때문에 어느 정도 어둡고 거친 분위기는 예상했지만, 그래도 장르 자체가 오컬트 미스터리로 소개되다 보니 '무섭고 기이한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를 기대했던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 이 영화는 해결이 없는 영화였습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관객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영화였습니다. 그게 처음에는 당혹스러웠고, 나중에는 오히려 이 작품의 가장 큰 강점이라는 생각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리뷰에서는 곡성이 어떤 방식으로 관객의 '믿음'을 흔드는지, 배우들의 연기가 서사 구조 안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지, 그리고 이 영화가 왜 여전히 회자되는지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