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 영화를 보기 전에는 솔직히 '잘 만든 복수 스릴러'를 기대했습니다. 이병헌이 약혼녀를 잃고 살인마에게 복수한다는 줄거리만 보면, 전형적인 액션 복수극처럼 읽히기 때문입니다. 김지운 감독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으니 연출은 탁월하겠지 싶었고, 최민식이 악역이라니 그 자체로 충분한 이유가 됐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게 있었습니다. 이 영화가 '복수에 성공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복수를 선택한 인간이 어떻게 무너지는가'를 다루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대했던 카타르시스 대신 불편함이 남았고, 그 불편함이 오히려 이 영화를 오래 기억하게 만들었습니다.복수는 완성됐는가, 아니면 시작됐는가악마를 보았다의 핵심은 복수의 완성이 아니라 복수의 구조 자체에 있습니다. 주인공 수현(이병헌)은 연쇄살인..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 이 영화를 보기 전에는 '아들을 구하는 어머니'라는 설정이 다소 뻔하게 느껴졌습니다. 모성애를 전면에 내세운 한국 영화라면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감정선이 있지 않나 싶었거든요. 그런데 봉준호 감독의 2009년작 는 제가 예상했던 방향과 완전히 반대로 흘렀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한참 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건 어머니의 눈물이 아니라, 그 눈물 뒤에 무엇이 있었는지에 대한 불편한 질문이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단순히 줄거리나 명장면을 나열하는 대신, 가 '모성'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뒤틀고 있는지, 그리고 그 뒤틀림이 왜 오늘날에도 유효한 이야기인지를 중심으로 이야기해보겠습니다.모성 신화를 해체하는 방식 — 이 영화가 진짜 불편한 이유많은 한국 영화에서 어머니는 희생의 상징..
솔직히 말하면, 처음 이 영화를 보기 전에는 DC 코믹스의 빌런 기원 이야기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배트맨의 숙적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프리퀄 같은 것이요. 그런데 막상 영화가 시작되고 나서는 그런 기대가 완전히 빗나갔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조커(2019)는 코믹스 세계관을 거의 활용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틴 스코세이지의 택시 드라이버나 킹 오브 코미디를 떠올리게 하는, 사회에서 밀려난 한 인간의 내면 붕괴를 정면으로 다루는 작품입니다. 이 글에서는 그 붕괴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세 가지 장치, 즉 계단, 광대 분장, 그리고 아서의 웃음소리를 중심으로 이 영화를 다시 들여다보려 합니다.고담의 계단이 말하는 것이 영화에서 계단은 단순한 배경이 아닙니다. 아서 플렉이 매일 힘겹게 올라..